글 쓰기 시작한 시간_ 오전 10시 37분.
어제 얻은 커피콩과 알로카시아 잎이 함께 담긴 엽서를 모니터 아래 두고 본다. 난 커피도 좋아하고 식물도 좋아하고 사진도 좋아하는 사람이니까, 삼박자가 딱 맞는 엽서라서 한번에 반했다. 카페에서는 두아 리파 노래가 나오네. 일하는 사무실이 카페와 한공간에 있으니 하루종일 꿍땅거리는 팝송이 흘러나온다. 컨디션 난조일 때는 귀가 웅웅거려 싫지만, 그럭저럭일 땐 또 그럭저럭이다. 오늘은 그럭저럭인 날. 트위터 하다 카톡 하다 네이버 보다가 엑셀 파일 쳐다보다가 그렇게 오전을 보내고 있다.
오늘은 아침 7시 40분에 눈을 떠 몸을 일으켰다. 베란다로 통하는 큰 창에 침대를 딱 붙이고 커튼도 열어둔 채로 살고 있다. 그래서 아침에 눈뜨자마자 식물 보며 멍때리기. 명상이라고 할 수 있을까? 사실 머릿속을 비우는 일이라기 보다는, 밤새 오르비폴리아 잎 끝이 마르진 않았는지, 고사리 화분들에 얹어 준 수태가 아직 촉촉한지, 몬스테라 신엽은 조금 더 짙어졌는지, 새순이 올라오는 줄기는 없는지, 뿌리파리가 날아다니지는 않는지 이리저리 관찰하며 생각하는 시간이다. 식물 외에 다른 것은 생각하지 않으니까 명상이라면 명상이다.
오후 1시 09분 기록_
점심시간에 밥을 후다닥 먹고 조금 걸어 나가서 예술서적들을 모아 파는 근처 작은 서점에 들렀다. 11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동네서점 에디션을 사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정작 재고가 없어 사지 못했고(인기 많구나!) 다른 책 두 권을 골라 샀다. 지역재난지원금이 충전된 카드를 내밀고, 3만원을 결제했다.
문자 띠링.
지역재난지원금 잔액 8,200원! 40만원의 충전금을 다 썼단 말인가? 다소 충격적. 일단 너무 빠른 속도로(일주일만에) 써 버린 것이 다소 부끄럽다. 나도 참 나다 싶기도 하고. 대충 떠올려 보면, 재난지원금이 충전되자마자 미용실에 달려가 클리닉과 염색을 했다. 그 주 주말에 화원에 가서 식물과 화분들을 샀다. 그리고 책도 몇 권 사고, 주말에 먹고 마실 장을 보고, 화분 놓을 선반 하나 사고, 일하다가 커피사먹고, 동료들과 밥사먹고, 핸드폰 그립톡 사고 등등등 하다보니 이렇게 됐다. 아휴. 다른 사람들도 이렇게 쓰고 사나? 소비가 낙인 인간인 나라서 그런가. 남은 8,200원 가지고는 무얼 하나. 까까 사먹어야지.
오후 3시 38분 기록_
아니 하루 일기를 이렇게 촘촘하게 쓰는 사람이 있나 싶지만 사무실 자리에 앉아도 도저히 할 일이 없는 자이기에 또 블로그 글쓰기 창을 열었다. 점심 먹고 엑셀 켜서 셀 몇 개 정도 채우다가 (그것도 도중에 안함. 이거 꼭 해야되나? 싶어서.) 회사에 갑자기 놀러온 엄마와 아빠를 맞이하였다. 두둥. (보통 일하시는 곳에 엄마나 아빠가 놀러오기도 하고 그러나요? 저는 전 직장들이 카페였다가, 회원 단체였다가 해서 부모님이 가끔 오신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잔씩 사 드렸고, 잠깐 이야기 나누다가 옥상 텃밭을 구경시켜드렸다. 집에 고추를 200그루나 심었다는 아빠가 내 텃밭을 보고 재미로 하는구만, 하며 (비)웃었다. 뭐, 나도 허허 따라 웃었다. 실제로 재미로 하는 거니까.
엄마와 아빠가 커피를 손에 들고 나갈 줄 알고 일회용 잔에 시켜 드렸는데, 날씨가 더워서인지 컵을 비웠다. 아깝다, 하다가 여기다가 벼르던 식물서리를 해 가야겠다는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떠오름! 사무실 뒷뜰 화단에 이름 모를 야생화가 조로록 심겨 있는데 며칠 전부터 저걸 화분에 퍼다가 베란다에서 키워봐야겠다고 생각해 오던 터였다. 호호호. 엄마와 아빠가 가고, 사무실에 잠깐 앉았다가 동료가 컵을 들고 나가길래 나도 쪼르르 따라 나갔다. 동료는 휴게실 창문으로 지켜본다 하고, 나는 오후 땡볕의 뒷마당으로 나가 맨손으로 흙을 파기 시작했다. 너무 잘 보이는 곳의 풀을 파가기 찔리니까 쓰레기통이 가리고 있는 후미진 곳에 심겨진 친구를 골라 공략! 주변을 둥그렇게 파내고, 국자로 스프 뜨듯 뿌리 부분을 퍼냈다. 의외로 순둥하게 퍼내졌다. 준비한 일회용 아이스 컵에 잘 담아 주고, 돔 뚜껑을 닫아 휴게실 한 켠에 안보이게 놓아두었다. 퇴근할 때 집에 가져가서 화분에 심어 줘야지 후후. 회사 뒷마당 친구, 넌 나랑 가서 살자고.
그러고 또 자리로 돌아왔지만 도저히! 할 일이! 하나도! 없다! 의자에 엉덩이 붙이고 있을 수가 없어 옥상을 다시 갔다. 점심 이후부터 작업자 두명이서 화분에 나무 다섯 그루를 심는 작업이 거의 끝나갈 것이기 때문. 센터장은 신경쓸 거 없댔지만 난 공간지기니까 참견하러 가야 한다. 작업자님이 앞으로 사흘 간은 물을 잘 주어야 한다며, 이번엔 잘 살려 보자며(전에 식재한 나무들은 한겨울을 지나 다 죽어 버렸다.) 친절히 설명해 주었다. 그럼 그렇지, 공간지기의 역할은 끝도 없군! 경비원, 농부에 더해 정원 관리사 업무까지 해야 한다.
작업자들이 떠나길 기다렸다며 2층에서 글 쓰는 나와 동갑내기인 작가님이 나오셨다. 같이 텃밭에 물도 주고, 고수 새싹이 너무 몰려 자라고 있으니 잘 떠서 다시 자리잡아 주고, 해를 등지고 물을 뿌리면 무지개를 볼 수 있다고 알려드리고, 열심히 뿌려 보았지만 무지개는 볼 수 없었다. 자리로 돌아가도 도저히 할 일이 단 하나도 없다고 미쳐버릴 것 같다고 하니, 자기 친구는 회사에서 팬픽도 쓴다며 단 한 마디로 나에게 위안을 주었다. 그래서 나는 회사에서 일기 쓴다. 호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