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사!

이러저러한 이유로 블로그를 이사했습니다.

거의 모든 면이 이상한 회사에서는 금요일도 힘들다 기억을 위한 기록

 크레센도
크레센도.

금요일이면 응당 잦아들어야 할 고통이 점점 커져서 오늘은 결국 울어버렸다. 며칠 전부터 '상담을 받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사그라지지 않는다. 시민단체인 전 직장에서 오롯이 받아내어야 했던 그 부당함과 이상함들이 쌓이고 쌓여서 해소되지 않는 무언가로 나한테 남아있는 것 같다. 완전히 단절되지도 못하고, 어딘가 언저리에서 점점 더 이상해져가는 그곳의 이야기를 들으며 스스로 고통의 나락에서 나오지 않고 있는 느낌. 얼마전 그곳 활동가들과 오랜만에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 '쌤, 건강치 못한 것 같아'라는 말도 들었다.

다시는 여성운동판과 관련 있는 그 어떤 것도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는데, 몇 달 쉬지도 않았는데 결국 불안했고, 누가 불러주니 쌩 하고 들어와 계약직에 앉았다. 여기도 매일같이 거의 모든 면에서 이상함과 부당함을 발견하며 살고 있다. 다행인 것은, 예전처럼 '내가 오롯이 감당한다'는 누가 지우지도 않은 사명감같은 건 없다는 거다. 그래서 괜찮은 줄 알았는데, 날이 갈수록 고통의 정도는 줄어들지 않는다. 금요일인데! 제일 힘들다! 이건 분명 이상하다.

그리고 최악인 것은, 가까운 사람들과 친밀한 사람들에게 나의 고통을 전이시킨다. 이게 상담을 받아야겠다고 오늘 최종적으로 결심하게 된 계기이다. 더이상은 고통을 덜 느끼려고 왜곡되어 있고 싶지 않다.

상담을 받기로 했다면 괜찮은 상담소를 찾는 것이 과제. 동료에게 물어보니 여러 가지 힌트들을 주었다. 입주사무실 선생님 중 한 분에게 물어보면 어떨까, 라고 하셔서 마침 그 분이 출근해 있어서 옆방으로 갔다. 분명히 내 편일 사람들 셋이 모여 회의 전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어떤 문제로 상담을 받으려고 하느냐에 따라서 추천해줄 곳도 다르지 않을까란 질문에 내가 겪고 있는 것들을 이야기하는데, 갑자기 눈물이 터지더니 멈추지가 않았다.

상담을 받아야겠단 다짐을 주변의 꽤 여럿에게 이야기했지만 운 적은 없었는데. 평소같았으면 금요일을 갑옷처럼 입고 고통을 쳐냈을 텐데, 오늘은 그렇지가 않다.

그래, 상담을 받아야겠다.

회사에 오니 고통의 강물이 차올라 발밑에서 참방대고 있었다 기억을 위한 기록

월요일이 왔고, 오늘도 어김없이 회사 욕을 하며 출근. '고통의 강물'이란 은유에 걸맞게 사무실이 물바다가 되어 있었다. 주말사이 내린 비와 건물 부실 리모델링 공사의 콜라보=회사 워터파크 개장! 양말 벗고 슬리퍼 신고 바지 걷어붙이고 쓰레받이로 오전 내내 물을 펐다. 제습이 아닌 냉방으로 돌려야 잘 마른다기에 에어콘은 종일 파워냉방으로 가동되고 있다. 미열에 인후통 증상이 있어 집에 있기로 한 동료가 참으로 현명했다. 작은 증상이라고 생각하고 여느 한국인처럼 꾸역꾸역 회사에 나왔으면 오늘 몸살이 났을 것이다.

동료가 자리를 비우니 내가 조금 더 구려지는 것 같다. 할 필요 없는 말들을 괜히 내뱉고 있다. (하필이면 새로오신 직원분이 티셔츠를 뒤집어입은 걸 내가 발견해버렸지 뭐야.) 지금은 팀장과 센터장이 외부 회의로 자리를 비운 시간. 동료가 없어서 키득대며 과자 까먹는 깨알재미는 없지만, 평화롭긴 하다. 늦게들어와라, 더 늦게 더 늦게. 아예 안들어오시면 더 좋고요.

+) 회사 뒷마당 화단에 레몬새싹은 무성해져가는데, 심으신 직원분이 어느날부터 나오지 않아서 걱정이다. 건강히 잘 지내셔야 할텐데.

일하기 싫을 때 꿀팁 기억을 위한 기록

_11시 05분

얼마전에 어떤 분이 알려주신 일하기 싫을 때 꿀팁이다. 한글을 일단 켠 다음, 글자색을 흰색으로 하고 회사욕을 막 쓰는 거다. 그래서 지금 누군가 내 모니터를 본다면 정말 이상할 것이다. 커서는 움직이는데 글자는 안보이니까. 좀 이상한 사람 같아보이는데, 아무도 안보니까 상관없다. 아무도 안보는데 왜 굳이 한글을 켜고 이 짓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리 일하는 척을 해보려고 해도 할 게 없다. 이 회사는 날 왜 뽑았을까? 그래도 오전에 꼬물꼬물 뭔가 하다보니까 (편의점에서 우유 사다 씨리얼 말아먹은 거 포함) 벌써 11시가 넘었다. 오늘은 금요일이니까 가벼이 보내야지. 할 일들은 다 다음주로 미루면서. 오랜만에 쓰는 일기인데 보이지 않는 글자를 타이핑하고 있자니 기분이 너무 이상하다. 회사에서 내 존재같다. 허공을 떠도는 이 커서가.


_11시 21분

팀장님이 종이를 북북 찢는 소리를 들으며 자리에 앉아 있다.


_11시 28분 : 이 모든 괴상함에 대해서

이 센터를 담당하는 시청 공무원이 사무실 문을 빼꼼 열고 'KBS OOO'에서 취재를 나왔다고 한다. 팀장이 언제 일어났는지 벌써 내 뒤를 쌩 지나 문을 향한다. 전시관 정도 찍으시면 될 것 같다고 하며 공무원을 데리고 홀 쪽으로 나간다. 정말 괴상한 일은 지금부터. 얼마 전 새로 온 직원님이 전화통화를 시작한 것이다.

"응, KBS OOO인가? 그거 요즘 누가 해? OOO가 해? 아닌 것 같던데? ··· "

뭐야 진짜. 순간 옆자리 동료와 나눈 카톡: 뭐야, 저님? 개황당. 세상에서 제일 이상해.

사무실 문 너머로 센터장 목소리도 들린다.

"여기 담당하는 직원이 있어요. 공간 매니저(=나)라고 ··· "

와. 순간 나 부를까봐 개쫄았다. 다행히 그냥 또 아무말 한 것 같더라고. 진짜 이 회사 너무 이상하다. 이상해서 속 울렁거린다.


_17시 01분

드디어 퇴근이 내다보이는 시간까지 왔다. 동생이 카톡으로 오늘 '시간이 눅눅하게 간다'라고 했다. 기분나쁜 물기를 남기며 금요일이 가고 있다.


싫어하는 사람을 싫어하다보니 내가 아팠던 어제 기억을 위한 기록

_ 나는 싫어하는 사람을 싫어하는 데에 너무 힘을 많이 쓰는 것 같다. 싫은 사람이 내 생활반경 내에서 나의 에너지를 쓰게 하는 일이 없는 세상이 있을까? 그런 데가 있다면 하늘을 날아서라도 가고 싶은 마음이다. 
어젠 저녁 당직이 있는 날이었다. 분식집에서 김밥과 돈까스를 사다가 동료가 퇴근하기 전에 함께 후다닥 맛있는 식사를 하고 기분이 꽤 괜찮았었다. 그런데. 별로 대화하고 싶지 않은 사람과 한시간 가까이 싫은 이야기를 한 것이다. 너무 지치고, 에너지가 쓰이고, 싫고, 동의하지 않고, 나와 너무 달라 견딜 수가 없었다. 갑자기 목이 부어오르는 것 같고 브래지어가 누르는 가슴께가 토하기 직전처럼 어지럽고 답답했다. 이 컨디션이라면 내일 긴급하게 휴가라도 내야하나 고민하며 '아프면 3~4일 집에서 쉬기'같은 걸 네이버에 검색하면서 퇴근시간이 되길 기다렸다. 김밥도, 쿠키도 평소라면 냠냠 집어먹었을 눈앞의 간식도 눈에 안들어오고.

_ 금요일이라 그런가? 오늘은 괜찮다. 어제 밤늦게까지 손에 흙 묻혀 가며 식물들 분갈이 하고 목마르다고 아우성인 애들 물 주고 푹 잤더니 7시 10분에 눈이 떠졌다. 점점 좁아지는 베란다에 의자를 가져다 앉고 좋아하는 노래를 듣는다. 날씨를 검색해 보고 옷은 최대한 편하게, 내 몸을 아무데도 조이지 않는 걸로만 찾아 입었다. 출근해서 동료가 유튜브에 영상 업로드를 예약하는 걸 구경하고, 옥상 텃밭에서 까무러치게 귀여운 꼬마오이들을 보고, 휴게실에서 커피를 내려 칼로리바란스와 후식으로 후레쉬베리까지 먹었다. 알라딘에 들어가 한눈에 반해버린 SF 책과(제목은 <나는 절대 저렇게 추하게 늙지 말아야지>, 사은품으로 '진짜 퇴근하고 싶다'부채도 신청했다. 책과 부채 모두 사무실 내 자리 가장 잘 보이는 길목에 두어야지.) 권김현영 선생님의 신간도 주문했다. 자리에 앉아 미뤄뒀던 업무를 호다닥 하고 일기쓰는 중! 호호. 금요일의 시작 좋아. 점심은 롯데리아에서 햄버거랑 감자튀김 먹을거야. 시원한 스프라이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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